"바람이 분다. ~ 오늘 인생의 장미를 꺾어라" 인문,사회

솔로몬 왕의 고뇌 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Emile Ajar), 김남주 | 마음산책 | 20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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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와 관련해서 그의 늙음과 죽음에 대한,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말년에 대한 의식세계를 엿보게 하는 특별한 관심을 자극한다. 작중의 기성복 바지의 제왕인 여든 네 살 ‘솔로몬’의 늙음에 대한 들끓는 분노와 저항, 그리고 화자인 택시운전사이자 수리공인‘장(자노)’의 자선과 구원의 왕이 되고자 함은 결합하여 죽음에 대한 깨달음, 아니 삶에 대한 이해의 완결을 의미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두 인물의 혼합체가‘로맹가리’, 바로 작가 자신이었으리라고 믿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과거의 가수인‘마드무아젤 코라’의 말처럼 “젊음이 너무 일찍 왔다가는 것 같아, 그렇게 쉰 살이 되고 습관을 바꿔야 하는 거지...”에서 노년의 구체적인 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제아무리 마음의 변화 없음을 강변할지라도 시간의 흐름이 새겨진 온 몸의 변화를 인지하는 세상 사람들과 세상은 바뀌어야 함을 종용한다. 그래서 늙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가, 또한 다가온 죽음이라는 운명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는 고뇌이고 또 고뇌이다.


 


솔로몬은 이름 없는 사람들, “태어나면서 고통이라는 기성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종점에 이를 때까지 겸허히 입고 사는 사람들”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구호전화를 운영한다. 여든 네 살의 노인은 이 행위를‘명예로운 무엇’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청년 장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건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즉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고뇌를 피하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협받는 다른 종(種)을 생각하면 자신의 개인적 처지가 덜 불행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듯이, 점차 인간적인 경의의 의미가 교만에 자리를 내주는 연민을 나누고자 하는 사심 없는 구원의 행위이기도 하다.


 


솔로몬의 제안으로 장은 이처럼 잊혀져가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고 급박한 절망을 어루만져주는 구호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한 때 가수였던 예순 네 살의 여인‘코라 라므네르’를 방문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가수, 홀로 늙음을 온전히 마주해야하는 여자를 위해 장은 “위협적인 환경에 처한 종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그런 감정”으로 도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망각이라는 부당함에, “덧없음과 먼지, 바람과 같은” 삶의 고뇌를 위로하기위한 장의 방문은 코라에게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동물적인 자력(磁力)”을 발산하는 청년의 우호적 예의는 한낱 노인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억압되었던 불씨를 당기게 한다.


 


여기서 소설 속 인물들, 구호사업을 하는 솔로몬, 사회가 망각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장, 청년 장을 통해 삶의 매력과 의욕을 바라보는 코라 모두 자신 대신 타인을 통해 꿈꾸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산다는 것,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을까봐 너무나도 두려워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즉 고뇌를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장의 자기해석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들이 타인을 통해서 꿈꿀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자기 자신의 존중과 승인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의 물음이자 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에 대한 답변을 오만하게 몇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분노, 항변, 전면적인 반항에는 희생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처럼 삶과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잘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기 삶의 주장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지대하다면 너무 우울하지 아니한가? 그래서 인생에서는 타협해야 하고 부분적으로 수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장의 주장은 나이 들어 고집스러워진 삶의 시선을 바꾸어야 하는 용기와 자세를 일깨운다. 그리고 이것들을 지탱하는 가치로서 자신보다 상대방의 안녕을 원하고 그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것, 어떤 가치에 대한 사심 없고 깊은 집착이라는 사랑(Amour)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방향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포틀래치(Portlach), 즉 신성한 성격의 파괴나 증여라는 지고의 원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발견은 로맹가리의 죽음을 해석하는 단서처럼 보인다. 조르주 바타이유가 북미 인디언의 증여메커니즘인 포틀래치를 인용하면서 과잉의 신성한 소비, 즉 죽음의 신성성을 말하고, 그리고 두 개체의 하나로의 결합인 사랑의 행위가 곧 죽음의 다른 이면임을 보았듯이 죽음은 신의 세계로의 도달임이라 느꼈으리라는 것이다. 자연사라는 형편없는 삼 등급 죽음을 회피하려는 이 소설 솔로몬처럼, 최고의 죽음을 생각했으리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것은 인생에 대한 멋진 수리를 완료하고, 세상을 채우는 허접한 이론들과 끝나버린 이성을 넘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아래 인용문장과 같은 장의 포부와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자연에서 쓸모를 잃어버린 모든 구조 요청에 응답하고, 나의 전설적인 후의로 그들의 피해를 보상해주고 그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리라. 나는 솔로몬 왕이 되리라. 바지의 제왕. 기성복의 제왕도 아니고 아이를 두동강 내라는 고대의 왕도 아닌 명실상부한 진짜 솔로몬 왕이 되리라. 나는 사태를 장악하고 그들의 머리위에 자선과 구원의 비를 내리리라.”


 


이처럼 소설은 늙음, 그리고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 삶을 수리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진솔한 목소리를 지닌 청년을 매개로 순수하지만 사색적이고, 코믹스럽지만 지적인 문장으로 보통 사람들의 불안과 고뇌를 위무해준다. 평범치 않았던 작가의 면모 때문에 단어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읽게 하며, 이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어느 작품보다 따뜻하고 유쾌한 문장과 이야기가 일품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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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과 여백의 의미 인문,사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황문성 | 도서출판비채 | 20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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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곤 한다. 이런 상념이 반복되는 데에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반백년 가까이 살아왔음에도 내면의 수양이 멀어도 한참이나 먼 것임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닌데 말이다. 마침 깊고 넓은 수렁에 빠져 이것을 헤쳐 나오는 데 기력이 많이 쇠잔해 있어 그만 멈추고 그저 영원한 안식에 몸을 맡기는 것이 어떨까하는 즈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주어진 어떤 계시 같은 것일까?


 

난 용기까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갈 수 있는 힘이 내게 남아 있는지,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을 따름이다. 내가 왜 힘겨워 하는 것인지, 지금의 수렁이 어떤 실체인지, 내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 것인지, 과연 빠져나와야 할 만큼 삶의 가치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를.


시인의 목소리는 고독처럼 내게 가까운 그것이었다. 나 역시 그처럼‘영원한 외로움과 기다림의 고착물’이라 설명되었던 그의 詩, <입산>의 ‘골짜기’가 되곤 했으니까. 친구가 들려주는 같은 종(種)으로서의 위로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알고는 있었으나 잊어 버렸던 삶의 이해들을 다시금 상기하고 그것들의 정말의 의미를 가슴 깊숙이 받아들이는 이 과정은 내겐 절실함의 밧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힘겨움의 본질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절로 나를 이렇게 이끌고 있었다.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질문들 - 그악스럽게 탐욕에 차 소유의 집착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취함을 위한 좌절은 아니었을까? 아님 주변의 온갖 것들에 분노를 뿜어내다 지레 지쳐 버린 것은 아닐까? 아직 견뎌낸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나를 완전하게 채워두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혹여 온통 상상속의 걱정거리가 산처럼 쌓여 미리부터 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의 답변이 아니라 그냥 듣고 토닥여주는, 바로 그 위로의 언어와 행위만으로도 족했으니까. 그러다 무심히 보았을 문장들이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나는 그것에 밑줄을 긋는다. “내 몫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내 몫에 만족하고 있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일화가 어떤 공명을 일으켰다. 그리곤 ‘빈손’과 “바늘 하나 찌를 곳이 없는 충만을 뜻한다”는 ‘여백’의 가득함과 여유의 이해가 비로소 내 관념의 바다에 안착했음을 느끼게 된다.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둬야 한다는 것과 영혼의 공간이 형성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의미하는 것을. 문득 오랜 친구가 언젠가 테이블 위의 주먹 쥔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포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녀는 벌써 여백과 빈손이라는 삶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하고.


 


나는 시인의 문장들을 다시 좇는다. 거기엔 “칼날 인(刃)자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합성어” 인(忍)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상태를 그냥 견디어내다.”는 뜻과 함께 놓여있다. 세상에 이렇게 고통스러운 글자라는 말의 의미가가 새롭게 다가선다. 내가 생각하는 인내는 아직 어설픈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준비하기 위한 오랜 시간의 견딤이 무엇인지를 내게 새겨두라고 다짐한다. 어부가 찢어진 그물 깁는 것처럼 준비하고 인내하는 것의 의미를. 조급하게 깁지도 않은 그물로 바다에 나가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은 그러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주어 담을 과실의 적음에 좌절하는 어리석음의 반복이 아니었는지를. 인생이란 바로 준비하는 과정임을.


 


이제 어느 소설가가 썼던 돌돌 흐르는 산 속‘여울물 소리’의 실체가 시인이 말하는 내면의 소리임을 알게 된다. “초가지붕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 그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쥐었던 주먹을 펼치고,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은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일 뿐”임을, 채움이 아니라 빈 공간을 새겨두게 된다. 삶의 의미와 향기가 그득한, 그리고 위로의 힘이 되어 준 책으로 오래 기억 될 것 같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고령화와 저출산에 직면한 한국사회, 무얼 준비해야하는가! 인문,사회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조지 매그너스(George Magnus), 홍지수 | 부키 |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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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무상급식에 대한 보수정당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보면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사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정치지배 권력은 단기적 이익실현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부의 축적을 위한 정책을 위해서는 복지정책과 같은 장기적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장애가 되는 것이고, 해서 기를 쓰고 복지정책을 축소하려한다. 또한 선거와 같은 이해관계에 얽힌 당사자들인 이들은 단기적이고 가시적 성과에만 열을 올려 10년, 20년, 30년 후의 한국사회가 부딪치게 될 문제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부자 감세정책을 밀어붙이고 복지예산 역시 권력의 홍보 전략화하면서 가시적인 곳의 집행만 이루어져 정작 빈곤계층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예산의 효율적이고 균형적 배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화되는 시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가장 급격한 노인인구 증가국의 하나이며 , 출산율 또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와 같은 살기 힘든 국가들과 같은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로서 세계평균의 50%를 밑도는 그야말로 앞뒤가 꽉 막힌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고령화 사회를 지탱할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며, 노인 인구의 생존을 보장할 국가의 재정적 준비도 전혀 없이 오직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해야만 한다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저술은 바로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 즉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의 급격한 진입에 따른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당면 과제와 이로인한 영향들을 제시하고,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를 고찰하고 있다. 적시되고 있는 구미 선진국 사회들의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는 물론 개발도상국, 빈곤국들의 현상을 비교 분석하면서 발생가능하고 우려되는 고령화관련 비용의 증가로 인한 재정 압박을 비롯한 국가별로 직면하게 될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또한 회피할 수 없는‘세계화’라는 자원의 무차별적 이동을 여하하게 국제사회가 균형을 유지하며 상호작용 할 수 있는지를 이민과 자본의 유출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인구는 65억 명이고 2050년에는 9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의 중위 연령은 28세이나 2050년에는 38세로 높아진다. 출산율도 인구 대체율인 2.1명 이하로 떨어짐으로써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 6억7000만 명인 65세 이상 고령 인구도 2050년에는 20억 명으로 4배 가까이 폭증한다. 이는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생산가능인구가 1/4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의 인구 구조변화를 표현하는 이러한 지표가 지구촌 전체의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구미 선진국들의 경우 한국보다 고령화비율이 낮으며, 그 속도 또한 급진적이지 않으며, 출산율도 한국보다는 훨씬 양호하다. 게다가 사회보장제도가 한국의 열악한 수준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할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고령화 속도 및 고령 인구의 급증은 일본에 이어 세계최고의 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낮으며,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대다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을 정도로 사회보장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불감증과 정치권력의 무책임성이 결합하여 곧 도래할 2020년의 한국경제는 대책 없이 불행과 궁핍에 직면할 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고령인구의 부양을 위한 재정적 준비만이 아니라, 소득세, 소비세 등의 균형적이고 절충적인 조세정책, 의료 및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재정비, 부족한 노동인구의 충당을 위한 세밀한 이민유입 정책, 기타 공공정책 등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여 할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준비와 재원, 제도정비를 위한 시간을 미룰 만큼의 여유가 없다. 이 저술에서도 지적하듯이 한국은 대만과 함께 연금 지출 등 재정적 압박으로 국가경제가 2010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하고 2035년 무렵에는 극심한 압박에 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저자의 지적처럼 오늘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체제로는“빈곤층의 요구는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중산층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으며, “순조롭게 고령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국가나 수정된 자본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한 과정이 될 것인데, 줄어든 생산가능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참여를 위한 보육시설의 확충등 환경적, 제도적 기반 마련과 싱가폴과 같이 55~64세 연령의 의무채용 등 적극적인 정책이 요구되며, 특히 노동력 공급부족이 가장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경우 이민의 적극적인 수용도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더해 부유층, 고소득자, 기업에 높은 세율을 적용해 사회보장재원을 확충하고 이의 일방적인 부담의 형평을 위해 일부분은 판매상품등에 소비세로 전환해 절충적이고 형평성 있는 조세정책으로의 개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모두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으로 다분히 준계획경제체제로의 돌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이처럼 단순히 영유아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인구의 증가라는 막연한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는 벌어들인 것을 지출하는 즉, 저축율의 하락을 동반하고 공공지출의 증가를 초래한다. “고령화 논란의 핵심은 돈”이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지구촌이 마주한 최대의 경제적 시험무대이고 개인과 국가에 대한 압박이자 공포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위기인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세계화’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돌파구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사실 세계화가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선진국들로의 자본과 노동력의 유입으로 개발도상국들과의 공존이 그나마 가능했다는 긍정성도 존재해왔다. 다시말해 중국과 같은 신흥국들의 거대한 자본축적이 선진국들에 투자로 유입되어 지금까지는 상호 의존적인 안정이 가능했으며, 부족한 노동력이 못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이동하는 움직임을 자연스레 조장하여 균형을 맞추었으니 말이다.





한편 인구구조의 변화는 세계경제 및 정치적 위상의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젊은 층의 감소는 서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영유아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젊은 나라들과는 달리 중위연령이 40세에 육박하는 나이든 나라들의 군사력, 국가 안보능력에 심각한 도전국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마 갈등에 관여할 능력이나 의지를 감소시키고 이는 새로운 패자의 부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우리 한국사회는 심각한 노동인구의 부족과 고령인구의 부담으로 경제적 위기를 맞이할 조건을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명료하게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우리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이민유입에 대한 정책도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저축과 보험 등을 통해 더욱 늘어나야만 되는 사회보장 비용의 재원을 거둬들여 새로운 수입원을 조성하고, 특히 유입인력의 질적 수준에 대한 고려도 장기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도래하는 베이비붐세대의 고령화는 분명 당면한 심각한 과제이다. 그러나 베이비붐 이후세대는 더욱 끔찍한 사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심지어 “불안하고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으며 과도한 조세 부담을 안은 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세대라 하여‘아이팟(Insecure, Pressured, Overtaxed and Debt-Ridden)’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이들을 일생 내내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적은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없다. 재원마련을 위한, 아니 경제적 혼란과 이로인한 사회적 불행을 차단하기위해서라도 진중한 정책적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시대를 진단하는 다양한 거시경제의 전망과 검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이 저작은 우리와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국과 세계경제를 예측하고,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고 준비케 하는 강력한 지침이 되어준다. 이 시대에 반드시 검토되고 숙지되어야 할 경제가이드라 하겠다. 국민 모두, 그러나 특히 정책 입안자들, 정치인들이 꼭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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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시각 돋보이는 춘추전국 역사총서 인문,사회

춘추전국이야기 3 춘추전국이야기 3
공원국 | 역사의아침 | 201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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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국의 고서들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여타의 이야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12권의 저작은 신선하다. 서로 다른 내용의 진위를 검증하고, 허구에 불과한 진술이라면 왜 그러한지, 역사는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지, 오늘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새겨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인지를 말하는 역사서이다. 지리적 역사성은 물론, 지역의 특수성과 당대의 역학적인 국제질서, 정치문화적 당위성의 배경에 대한 고증에서부터 『사기』,『여씨춘추』,『국어』,『신서』,『좌전』에 이르는 총체적인 사서들의 비교분석까지 실로 방대한 작업의 산물로서 저자의 노력을 읽을 수 있는 저술이다. 아마‘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서구 고대사를 대표한다면,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는 동양 고대사로서 이를 뛰어넘는 저술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춘추시대란 기원전 8~5세기경 중국대륙의 고대국가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할거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방대한 저술 중 제 3권인 「남방의 웅략가 초(楚)장왕(莊王)」은 오늘날의 거대한 중국이라는 나라를 등장하게 한 기원전 7세기말~6세기 초의 중원 중심의 중국관을 요동치게 한 역사의 전환 시기라는 측면에서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가지게 한다. 소위 남쪽의 오랑캐라고 치부하던 화하중심의 중국인의 허세를 여지없이 허물어대는 독자적인 남방문화의 발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초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중국의 팽창은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라는 역사인식처럼 황하이북의 중원의 낡은 사상만으로는 팽창하는 세계를 담지 할 수 없었다는 이해이다. 초(楚)의 대두는 그만큼 오늘의 중국을 이루는 결정적 역사의 대사건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한수와 장강을 끼고 있는 물의 나라, 물을 빼고는 말 할 수 없는 나라인 楚는 이미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흐르는 물은 소통의 물이자 싸움의 물이다.”라는 구절처럼 문물의 자연스러운 교통을 만드는가하면 곧 갈등이 도사린 불온의 상징이기도 하다. 힘이 강대하면 세력의 확장을 위한 유용한 통로이지만 반대의 상황에는 그만큼 불리한 것이다. 역사는 양면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기원전 614년에 왕에 등극한 장왕(莊王)은 춘추오패 중 한 사람으로서 당대 중원중심의 무대에 초라는 나라를 등장시킨 인물이다. 일개 오랑캐로 치부되던 남방의 한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며, 중원의 패권국으로 자임하던 진(晉)과 제(齊), 그리고 진(秦)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패자로 부상하였으니, 중원 중심의 중국 역사는 새롭게 재편되어야 했을 것이다.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초나라를 등장시킨 핵심 인물인 장왕, 그리고 장왕이 그러할 수 있도록 조력한 재상‘손숙오’의 됨됨이에 대한 기록은 그대로 정치학이고 도덕철학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된다. 유명한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처럼 장왕의 관대함은 돋보인다. 아랫사람을 끔찍하게 아꼈던 군주, 무(武)란 무릇 창을 멈춘다. 즉, 지과지무(止戈之武)를 말하며, “포학한 것을 금하고, 병기를 거두어들이며, 큰 것(나라)을 지켜가고, 공업을 안정시키며, 백성을 평안히 하는 것”이라 말하는 멈춤과 절제, 바름(正)의 정신이 선 군주가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어쩜 당연하게 보이기조차 한다.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을 때, 죽은 적군을 위해 슬퍼하고 승리를 상례로 처리하는 자세는 적에게까지 외경을 갖게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중원의 패자인 진(晉)의 남하를 경계하기 위해 진의 위성국들인 정(鄭)과 송(宋),진(陳)등을 복속시킬 때에도 한 결 같이 무력보다는 화해와 동반자로서의 협력을 요구하는 덕의 정치의 진수를 보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사기』에서 훌륭한 관료의 원형으로 칭송되는 재상,‘손숙오’의 청렴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관료의 미덕은 장왕의 무사(無事)를 보완하는 탁월한 정책가로서 초의 성장을 주도한다. 이들 장왕과 손숙오의 사상적 배경으로『노자』사상이 깃들어 있음을 설명하는 장은 이 저술의 또 하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운동은 관성의 지배를 받아 평형에서 멈추지 못하지만 멈출 줄 아는 것, 자신의 임계점을 명확히 인식하려 한 것이나,“골짜기는 낮은 곳에 처하기에 물을 받아들인다.”는 노자의 정신이 그대로 스며들어 그 낮춤이 주변국을 초에 끌어들임으로서 패자로서의 성장 동인(動因)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물의 해독에 못지않게 당대의 국제질서와 사건들에 얽힌 사회, 경제적 배경이나 각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 하물며 군제나 토지제, 기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치밀한 설명들이 왜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납득시키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초와 진(晉), 양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낸‘언릉 전투’에 얽힌 진의 충신‘사섭’의“밖이 편하면 반드시 안의 우환이 있습니다.”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대한 충언은 이 저술의 매력적 구성을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사건과 그와 관련한 고사, 그리고 그 의미에 내재한 파급적 현상들이 미시적이고 때론 거시적 관점을 아우르면서 역사적 통찰을 해내는 것이다. 이로부터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지혜들은 정말 번뜩인다. 전쟁과 권력과 정치의 상관관계, 그리고 도덕성의 문제에 까지.





이 저작의 비판적 시각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중원 중심의 북방 연합을 와해시키고, 춘추질서의 새로운 담지자로 등장한 초나라에 대해 중원과는 다른 강한(江漢)일대의 토착문명을 기원으로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재조명하고, 인간에 대한 관념적 선진성을 지닌 초의 사상과 문화를 흡수함으로서 비로소 초라하고 낡은 중원을 탈피해 중국의 팽창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고대 한자 기록의 5할은 허구라고 초나라를 저평가한 편협한 중화사상과,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면 보이는 중국인들 특유의 정신승리법인 허세의 위선을 비판한다. 주 왕실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왕을 칭하며 황하가 아니라 한수와 장강에 제사를 지낸 남방의 패자, 낭만과 실용의 정신, “눈보라의 차가움과 꽃의 정열이 한꺼번에 있는 곳”, 초(楚)의 문화를 비범하게 읽게 해주는 걸출한 역작이다. 빛나는 성찰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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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집단의 이상과 규범이 경제적 효용의 선택을 지배한다. 인문,사회

아이덴티티 경제학 (양장) 아이덴티티 경제학 (양장)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레이첼 크랜턴(Rachel E. Kranton), 안기순 | 랜덤하우스 | 201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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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판단이자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모든 이론과 학문은 결국 한 장소로 모이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한다. '아이덴티티(Identity)', 즉 정체성(正體性)이란 개개집단 또는 개인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환경과 집단 내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내재화되고 습관화된 특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그간의 사회분석을 지향하는 여러 성찰에서 용어를 달리하긴 하지만 개인과 사회집단의 행동을 지배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일례로 푸코나 바디우가 말하는 소위‘장치’라는 것처럼 제도와 규범, 사회적 취향등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배경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방임하는 형태로 작동하는 힘이라고 역설한 것과 상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덴티티 경제학’이란 이 낯선 경제학의 새로운 접근은 전통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거나 놓치고 있는 인간의 인지적 편견과 심리학적 발견을 반영한 행동경제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제 효용의 선택에 있어서 개인이 소속된 사회집단의 배경에서 비롯되는 선호나 취향이라는 정체성, 다시 말해서 사회적 맥락에 기인하는 동기에 의해 효용을 결정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정체성 개념을 사용하면 현대경제학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명예나 의무는 물론 성차별, 인종차별, 조직 갈등 등 사회 제반의 현상이 규명 가능케 되어 그 현상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탐색의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례(實例)를 위해 기업조직과 교육,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빈곤과 인종차별의 현상에서‘정체성’이 결정적인 동기임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들은 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개인이 어떠한 집단적 소속 또는 위치에 포함되거나 포함되려하는 지라는‘사회적 범주’와, 그 집단 또는 사회의‘규범과 이상’, 그리고 ‘정체성 효용의 이익과 손실’의 저울질을 중심으로 인간의 동기가 사회적 맥락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소개되는 실험사례나 관찰된 일화는 우리 사회가 해명하지 못하거나 이론(異論)으로 분열되어 갈등을 겪고 있는 현안 문제들이어서 이해와 관심을 집중시킨다. 일례로 기업경영자들을 아주 혹하게 하는 매력적인 장으로, 기업조직의 갈등을 해소하고 효율적 경영관리를 위한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인데,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의 공정한 설정은 생산성과 연대하여 항상 고민에 빠뜨리는 부분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이상과 규범에 충실한 부류와 이에 반발하는 부류가 있다. 충성하는 집단을‘인사이더’라 하고, 적대하는 집단을‘아웃사이더’라 하면, 인사이더는“적은 노력을 기울일 때 정체성 효용을 잃지만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일부라고 느끼지 않는 조직에 많은 노력을 투입할 때 오히려 정체성 효용을 잃는다.”이 경우 아웃사이더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해서 과연 생산성이 제고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금전적 인센티브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군대조직이나 대기업들이 자아상을 효과적으로 변환시켜 공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형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신입 생도나 직원에게 입사초기에 강도 높은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더로 전환시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단 이 전환비용, 즉 정체성비용이 아웃사이더의 생산성 저하로 인한 손실보다 적은 수준에서 실시 될 것은 물론이다. 목표 달성도 하고 자원을 저감시킬 수 있는 효과적 발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일화들은 일선 경영자들에게 분명 유용한 장이 될 것이다.





한편, 우리사회는 물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교육문제처럼 민감하고 집단을 분열시키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사항들, 개혁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 원인, 학생이 학교에 가는 이유, 교육수요의 파악”등에 이르기까지 학부형, 교사, 교육 정책자에 아주 긴요한 시각을 제공하는 정체성과 교육경제학의 장은 이즈음의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실로 적시(適時)의 내용이 아닌가 한다. 아웃사이더가 되어 교사와 학교에 적대감을 갖는 학생이나 그들의 집단이 지향하는 정체성의 효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교, 교사가 상호 동일시하고 일체화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기존 경제학의 주장처럼 학생의 기술과 미래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는 기계적 교육의 편협성과 어떠한 사회갈등의 봉합을 위한 처방도 제시하지 못하는 헛된 정책을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규범이나 이상의 변화와 같은 정체성으로서만이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경제적 분석과 판단을 가능케 하는 예가 풍부하다. 남녀에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이 서로 다른 것이나, 이 남녀라는 성의 구분이 희석되어 어떠한 시장구조의 변화도 없음에도 직업의 구분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역시 정체성으로 해독할 수 있다. 소수자 우대정책이나 직업훈련프로그램과 같은 공공정책의 수립에 있어서도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의미하는 정체성의 반영은 절대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에 있어 필수적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인의 자선행위나, 광고, 정치행위, 나아가 증오와 폭력, 범죄의 행위까지 정체성이 경제분석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행동방식에 대한 규범은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지위에 따라 결정되며, 동기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한다. 어떤 행동은 소비를 증가시킬 수도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효용을 감소시킨다. 한 개인은 이런 상충관계에 균형을 맞춤으로서 효용을 극대화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개인의 효용 선택은 전통 경제학처럼 합리적 이성에 의한 선택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지적 편견의 작동에 의해서만도 아니다. 바로 개인이 속한 사회적 범주와 그 범주 속에서의 이상과 규범의 틀에서 결정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개념의 사회분석 틀을 접하는 순간 우리사회의 요즘과 같은 극단적 사회 분열의 해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과 국가와 사회 및 경제적 문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유용한 툴(tool)로 손색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학문적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15년 남짓 된 출발점에 서있는 유아상태의 학문이다. 그렇다고 정체성 경제학 자체가 학문적 유아상태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고전경제학에 수많은 취향적 효능을 반영하고 심리적, 인지적 편향이라는 행동경제학의 토대위에 서있는 학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 어쩌면 반드시 밟아가야 하는 길을 정말 유일하게 안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결한 언어와 일화로 짜임새 높게 압축된 정체성경제학을  개괄한 최초의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산업 경제, 교육, 여성 및 노동분야의 정책자들, 정치 및 정당인들, 기업 경영자들에게 이즈음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필독서로 권유하고 싶은 저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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